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시인이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1)현충시설 관계자 역량강화 국외사적지 답사
윤동주(尹東柱 1917~1945)와 송몽규(宋夢奎1918~1945)는 고종사촌 사이로, 중국 길림성 명동촌에서 태어나 명동 소학교, 은진중학교에서 함께 수학하며 문학적 바탕을 키우고 치열한 역사의식을 깨우쳤다. 송몽규는 1935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술가락>으로 등단했으나 그해 중국 낙양군관학교에 입교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중국에서 일본 경찰에 피체된 송몽규가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뒤 두 사람은 1938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재학시절 윤동주는 많은 시를 남겼고, 두 사람은 한국문학 동인지의 간행과 문학작품 품평회 등을 열어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1942년 일본 교토로 유학을 떠난 두 사람은 1943년 7월에 '재교토조선인학생민족주의그룹사건' 혐의로 검거되었다. 조선인 유학생을 모아 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이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1944년 3월과 4월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각각 징역 2년의 형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감되었다. 그리고 1년 뒤인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원인 불명의 사인으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9세의 짤지만 굵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아버지가 도착해 송몽규를 면회했을 때 송몽규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감옥에서 정체불명의 주사를 놓아 이렇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증언을 한 송몽규 또한 20일 남짓 지난 3월 7일 윤동주의 뒤를 따라 옥중 순국하였다.
▼후쿠오카 형무소 :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시와라구 모모치 2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