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탄광(3)/현충시설 관계자 역량강화 국외사적지 답사
▼해저 석탄 채굴을 위해 개발된 섬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 부른다. 하시마 탄광은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7.5킬로미터 떨어진 면적 63,000 제곱미터의 작은 섬이다. 에도 시대에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져 1875년부터 체굴을 시작했고, 1890년부터는 미쓰비시에 의해 본격적으로 채굴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여러차례 매립 되어 지금의 면적으로 확대 되었고, 주택, 학교, 점포, 병원, 사원 등 도시 시설들이 갖추어졌다. 인구가 가장 많을 때는 1960년의 5,267명으로 도쿄 이상의 인구밀도를 가진 섬으로 번영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 석탄 수요 저하에 따라 1974년 폐광되면서 인구 유출로 인해 지금은 무인도가 되었다.
하시마 탄광에 조선인이 유입된 것은 다카시마와 마찬가지로 1917년경이며, 1937년 중일 전쟁을 기점으로 조선인 강제동원이 증가하여 최대 800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 중 일부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 후 피해복구에 동원되어 피폭후유증까지 겪었지만 미쓰비시는 광복 이후 남아 있는 조선인들에게 배상은 물론 귀국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근대산업혁명유산의 하나로 하시마를 포함시켜 세계문화 유산 등록을 추진하였다. 일본 근대공업 발전을 뒷받침해 온 탄광이라는 점과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주거용 건물(아파트)을 세운 곳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한국 정부가 조선인의 강제동원과 노역을 인정하지 않는 한 동의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였고, 최종적으로 "일본이 징용 정책을 실시한 것에 관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조치를 강구한다."는 조건으로 등재되었지만 여전히 이에 관한 설명은 전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