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케 탄광과 만다갱,미야하라 갱(4)/현충시설 관계자 역량강화 국외사적지 답사
▼미쓰이 재벌 성장의 기반이 된 미이케 탄광은 한때 일본 석탄 생산량의 4분의1을 차지할 정도로 손꼽히는 탄전으로 조선인과 중국인 징용자가 많았던 곳으로 유명했다. 미쓰이 물산은 1898년 미이케 탄광을 인수하여 운영하며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통해 독점 자본 그룹으로 성장했다. 러일 전쟁 때에는 부족한 생산량을 충당하기 위해 미이케 탄광 전용 감옥을 설치, 죄수들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옷을 입히지 않고 족쇄를 채운 상태로 채탄 할당량을 채우게 했다.
미이케 탄광의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1891년 탄광 전용 철도와 1908년 미이케 항이 만들어졌고, 미쓰이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 다양한 산업에 걸쳐 사업을 벌여 거대 재벌로 부상하였다. 일제의 침략전쟁이 확대되면서 일본의 노동자가 전쟁에 동원되자 부족해진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을 조직적으로 동원했다. 탄광은 노동강도가 극심하고 사망율이 높아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작업장이었는데, 전쟁시기 일본 본토에 끌려간 조선인의 약 45%가 탄광에 배치되었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미이케 탄광만 9,300명에 이르렀다.
만다갱은 미야하라갱에서 남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구마모토현 아라오시에 위치하고 있다. 미쓰이에서 운영한 미이케 탄광 갱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시설에 동반되는 설비가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미야하라 갱은 1898년에 개갱해서 1931년까지 짧게 사용되었다. 깊이 약 160미터의 수갱에서 석탄을 캐내서 연간 40~50만톤의 석탄 산출을 유지하였지만 열악한 갱내환경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다 경기불황이 겹치자 폐갱되었다. 죄수들을 채탄 작업에 동원시켰으며, 그 가혹한 노동 때문에 '수라갱'이라고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