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흔적들

안동문화100선/안동이 낳은 민족시인 이육사/이위발 지음/(민속원) 출간

이위발 시인 2018. 1. 11. 12:23
320x100
SMALL


이위발은 1959년 경북 영양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과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출간.
논문「 이육사 시의 한자 시어 연구」로 석사학위 받음.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후기

 

육사가 십칠 세까지 살았던 그의 고향 원천리 쌍봉에서 마주 보이는 왕모산 중턱에는 자연석으로 축조된 왕모산성과 왕모당이 있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라는 <절정>의 시상지인 칼선대葛仙臺가 낙동강을 굽어보며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 있다.

그래서 나는 어린 마음에도 지상에는 낙동강이 제일 좋은 강이었고, 창공에는 아름다운 은하수가 있거니 하면 형상할 수없는 한 개의 자랑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십여 세 남짓 되었을 때, 장장추야長長秋夜를 책과 씨름을 하고, 밤이 한시나 넘게 되어야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하늘에는 무서리가 내리고, 삼태성三台星이 은하수를 막 건너설 때 먼 데 닭 우는 소리가 어즈러이 들리곤 했다.” 이런 정서가 깊게 배어있는 그의 고향에 2004, 탄신100주년 기념에 맞추어 이육사문학관이 개관을 하였고, 2017년 육사 자료를 전시해 놓은 정신관과 연수시설인 생활관, 육사생가 육우당이 복원 됐다. 문학관은 육사가 유년시절 동리 아이들과 쇠먹이 하러 다니던 불미골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오후가 되면 불미골로 아이들이 소를 몰고 하나 둘 줄지어 오른다. 고삐를 풀어 놓고 풀밭에서 뒹굴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골 입구에 소를 풀어 놓고 감자나 콩, 옥수수 등을 삶아 먹기도 하고, 골을 따라 흐르는 계곡에 내려가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저녁놀이 산과 들을 물들이면 배가 둥둥 부른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던 육사의 유년 모습이 어른거린다.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이름이다. 육사는 조부 이중직이 지어준 원록 대신 일제가 붙여준 수인 번호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것은 일제에게 단호하게 맞서는 것만이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일임을 깨달은 까닭이다. 또한 육사는 스스로 이란 이름을 지어서 사용하기도 했는데, 조선인으로서 일제에 끝까지 맞서 싸우다 죽음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사는 것이 이 길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들개에게 길을 비켜줄 수 있는 겸양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정면으로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서는 한 발자욱이라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내 길을 사랑할 뿐이오. 그렇소이다. 내 길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내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이오. 이래서 나는 내 기백을 키우고 길러서 금강심金剛心에서 나오는 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소.”라는 글에서 보이듯, 결국 그가 남긴 현대시 36, 시조 1, 한시 3, 40편이 모두 유언 같은 시다. 비록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그는 시를 쓴다는 것도 행동의 연속이다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 17번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나라를 찾는데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며, 일본 경찰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선비정신의 지조志操를 끝까지 지키다 순국하였다.

이 책을 내면서 참고문헌으로 사용한 책은 뒤에 밝혀 놓았다. 육사 선생 따님의 증언과 이병희 여사의 증언이 이 책을 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근대 인물인 이육사에 대해 쓴다는 것은 소설 쓰듯 창작으론 쓸 수 없는 것이다. 추론이나 유추보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써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안동문화를 알리는데 있어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든다는 기획 의도에 따르려 노력하였다. 아울러 이 책은 김희곤 교수의 이육사 평전을 주 텍스트로 사용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석사학위 논문 <이육사 시의 한자 시어 연구>를 쓰면서 육사에 대해 깊이 빠져 고통과 희열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책이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실천한 육사 정신에 무지개를 피워 그 빛이 후대에도 계속 이어지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차례-


이육사 연보(1904~1944)

왕모산 정기 받은 원촌
조부의 가르침은 인성교육
보문의숙의 신학문과 시회詩會
일본어를 배웠던 이유
대구생활과 백학학원
일본 유학과 관동대지진
민족사상의 본거지 대구 조양회관
중국 유학에서 접하게 된 루쉰 문학과 혁명
장진홍의거 사건과 수인번호 二六四
다시 구금된 대구격문사건
석정 윤세주와 운명적인 만남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와 의열단
중국의 대문호 루쉰과의 상봉
요주의 사찰 대상자로 구금된 서대문 형무소
시사평론과 시 창작 활동
절창의 시들을 발표
무기 반입 지령을 받고 북경으로 간 육사
베이징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
육필 시 ‘편복’과 ‘바다의 마음’
죽어서 고향에 돌아온 육사
첫 시집 출간과 유고 시 4편

작가 후기
참고문헌


728x90
B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