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 시인이 이영도 시인에게 절절한 사랑이 담긴 <편지>를 쓴 현장/통영중앙우체국/2010년 7월 11일/통영

2010. 7. 11. 07:03이하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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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

당신 그린 세월이 이렇게 소리없이 밀려오고 끝이 없습니다.

깊은 사랑이란 이렇게 슬프고도 어진 선물입니까?

당신, 나의 당신!

그리울 때는 어쩌면 죽을 상히 못 견디겠습니다만 갈 앉으면 외려 더욱 반갑고 향그럽습니다.

정향! 당신 만을 끝내 높게 맑게 외롭게 있어 주십시오.

귀한 정향! 당신의 그 높고 외롭고 정함이 이내 나를 빛나게 합니다.

이미 당신을 부르시는 종소리 울려 난 다음 바깥에서는 빗소리 들리고 창이 밝아 옵니다.

궂은 날씨 같은 세상에서 내 비록 남루하고 부끄러운 허울일지언정 내 앞에는 빛나는 당신이 언제나 자리하고 눈 떠 계시니 어찌 끝내도록 내사 슬프겠습니까? 스스로 알 듯도 합니다.

어제 황혼 무렵, 산에서 내려오며 꺾어 온 한 송이 항가새꽃.

당신의 붉은 정성, 내게로 향한 당신의 붉은 정성인양 나의 책상 머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진정 참된 사랑을 가졌으므로 나는 다시 어질게 느껴집니다.

-세월이 갑니다. 그리운 세월이 갑니다.

바람이 호면을 가늘은 살을 끼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세월은 우리의 목숨위를 스치고 갑니다.

정향!

그렇지 않습니까?

나의 귀한 정향!  안녕!

 

                                                                                                  1952년 6월 26일  청마

 

 
 
 
사랑한 정향!
정말 고운 달밤이었습니다.
같이 어디까지나 지향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어찌하여 나는 와 버려야 하는 겝니까?
그러나 어저께는 내게 과분한 날이었군요. 세 차례나 당신을 볼 수있었으니 --
일어나니 세시 반, 달은 넘어가고 없고 미륵산 조용한 그림자 위에 또렸한 별 한개가 보입니다. 저 별이 당신이 아닙니까?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지켜 비쳐 주고만 있을 당신의 애정,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한 정향!
오늘 내 안에서 무엇이 귀한들 당신만 하리까.
진정 당신의 고운 눈을 볼 때마다 와락 껴안고 싶은 무한히 고운 안타까움입니다.
무엄합니까?
나의 귀한 정향, 아아, 어느 하늘,
어느 세상에서 반드시 내가 당신의 반려가 되고 당신이 나의 반려가 될 날이 있을 것을 우리는 기약하여 좋겠습니까?
그리하여 그날에사 하루에 한시고 떠남없이 당신 곁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내가 생각하고,
당신이 보는 것을 내가 볼 수 있겠습니까?


나의 애달픈이여. 이렇게 곱고도 마음 아프게 하는 이여. 헛된 세월은 헛되게 흘러 갑니다.
아무 짝에도 보랍없는 세월이 흘러 갑니다.
이 헛된 흐름 가운데서 어디서 나를 부르는 나의 소리가 자꾸만 들려 옵니다.
들려 옵니다.         
                                                                                   
                                                                                                                     - 당신의 청마 -       1952년 7월 1일

 

 

 ▼ 청마 유치환이 이영도 시인에게 직접 <편지>를 쓴 통영 중앙우체국.

 

 ▼ 중앙우첵국에서 바라 보이는 가게가 당시 이영도 시인이 옷가게를 했던 장소입니다. 청마는 우체국에서 이영도 시인을 바라보며 <편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진솔한 자신의 사랑을 담아 편지를 띄웠다.   

 

 ▼ 청마의 시 대표적인 시 <행복>이 중앙우체국 입구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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