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실...구수하게 사람찾는 된장시인/영남신문/2013년 10월 15일(금요일)

2013. 10. 30. 17:17이하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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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매골 된장 담그는 시인 - 1. 이위발

 

열전

중앙과 지방이라는 지역적 차별이나 문화적 차이를 굳이 거론치 않아도 그곳에 사는 사람은 느낄 수가 있다. 이에 영남신문에서는 지역, 즉 우리의 이웃에 사는 끼와 재능, 사람냄새 나는 분들을 찾아보고 “문화의 중심에 예술이 있다. 예술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독자와 공유 하고자 한다.

 

 허허실실... 구수하게 사람차는 된장시인

 

산매골 된장 담그는 시인 - 1. 이위발

 

■글밭 35집 출판기념회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은 일 전, 산매골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글밭 35집 출판기념회가 벌어진 것이다. 작지만 소박하고, 일교차가 커 쌀쌀하지만 정 깊은 사람들의 온기로 훈훈한, 그리고 주민들과 문인들이 어울린 그런 곳이었다. 시간에 맞추어 하나 둘 모여들어 왁자지껄 이곳저곳으로 모여 문안인사와 손짓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들 한다. 바쁜 세태에 빗대어 글 하나를 마음속으로 그리고 곱씹어 되 내이니 그런 느림의 미학을 동경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회자의 철지난 유머러스함이나 참석자들의 보기보단 맛깔난 인사 소개에 모두들 자지러지게 웃음을 띤다. 이곳이 바로 사람을 불러 모은 된장 담그는 시인의 집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문인들과 마을사람들이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 곳에 모아 사람 잔치를 벌이는 그다. 이작은 모임이 앞으로 더 큰 파장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색소폰의 선율이 나직이 흐르고 부엉이 우는 어둠이 깊어가는 곳에서 정겨운 사람들의 황홀경이 넘쳐난다.

 

■한양에서 온 글쟁이

영양에서 태어나 서울 생활 30년을 거쳐 이곳 안동에 정착한 시인이다. 이름은 ‘된장 담그는 시인’으로 더 알려진 이위발(55)이란 인물이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좋아 시작한 출판업이 보기완 다르게 재화를 운용하는 것이 더 많아 괴로웠다고 한다. 출판사 경영 4년 만에 빚만 늘고 남의 집에 들어가 출판 밥을 먹은 지 11년을 정점으로 귀농, 산새들을 친구삼아 글을 쓰면서 된장을 담그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서울을 탈출하기위해 단계적인 계획을 세워 동생과 협심하여 부모님을 설득하고, 농사짓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논술사자격도 취득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차근히 진행한 결과였다. 정확한 주소는 안동시 와룡면 이하 오산로 332-20 산매골 달분네 된장이다. 이름을 지은 연유를 물으니 장모님의 이름이 임달분이고, 사랑하는 내자가 된장 담그는 방법을 배운 장모님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하역에서 차로 5분 거리이고 마을회관을 지나 영주방향으로 자리를 잡은 마을의 끝자락, 논을 객토로 정지해 만든 전원풍의 아담한 황토집이다.

 

■달분네 된장집

차를 몰고 들어서면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초록 잔디가 가지런히 깔려 국제경기의 축구장을 연상케 한다. 한 쪽에는 가을이 오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철모르는 해바라기가 꽃을 열고 아직도 깃대 세워 버티며 힘겹게 서있다. 집 옆엔 된장이 가득 들어있을 것 같은 장독이 가지런히 줄을 맞춰 해 바래기를 한다. 된장주문은 어떻게 하며 주문량은 어떤가? 물으니, 유통이라는 게 보통 정신 줄을 놓는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노후 대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매년 콩 값과 상관없이 조금씩 담그면서, 이제는 지인이나 아름 아름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택배로 붙인다고 전한다. 술 좋아하는 시인답게 막걸리를 내오는 폼은 된장시인이 무색할 지경이다. 아마도 막걸리 시인이라 불러도 어울릴 폼인 것이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자리가 무르익을 즈음에 이웃 가매기 마을에 사는 동생 이혁발(행위예술)화백이 찾아왔다. 형제간의 우애가 중앙 문단 지인들에게도 알려져 서울의 신문사에서도 취재기자가 내려오기도 했다고, 일 년 차를 두고 형님을 따라 내려 온 동생은 포도를 키우며 와인을 직접 담그는데 상표가 육감도라고 한다. 왠지 한번 음미해보고 싶을 정도로 구미가 당기는 이름이다. 형과 동생이 서로 의견충돌은 없냐고 물었을 때 동생이 대뜸 정치색이 달라 언성을 높일 때도 있지만, 근래엔 형님 연락이 없으면 보고 싶어진다고, 총각으로 지내고 있는 동생의 외로움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하자, 그것하고는 다르다며 극구 손사래를 친다. 그런 동생의 태도에 형의 입가엔 웃음이 저절로 돈다.

 

인터뷰 중 작은 유머에도 함박웃음을 보이는 시인은 근엄함이나 센치멘탈한 문학도와는 상관이 없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된장 담그는 시인’이 맞는 것 같아 보였다. 뒤에 그림자로 보이는 에펠탑의 모습은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것 같다.

 

 ■산기슭 어슴푸레 어둠이 내리고

사람이 좋아 서로를 위하고, 모인 자리가 좋아 흥에 취하니, 시간 또한 집 뒤의 산기슭에 어슴푸레 해거름이 낮게 드리우며 불타는 적갈색의 그림을 띄운다. 막걸리 한 잔에 옛 시절의 고생이 떠오르는가 보다.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유명 작가의 작가론, 작품론을 묶은 <작가연구>시리즈물을 기획 출간하여 스테디셀러를 만들어 보기도 해봤고, 그 시기에 만난 문단의 거장들 또한 기억에 회자된다고 한다. 문학상 수상작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이문열, 이청준, 박완서 최인호 등 당대의 수많은 문인들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이 현재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그때 동인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시 창작에 몰두하다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게 된다.

그 시절에도 마음속으론 동경하던 귀향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처음 안동에 와서는 적응에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초를 다투는 바쁜 나날이 없어져 버렸고 지겨우리만치 만나던 사람에 대한 공포도 없어져 버리니 이젠 찾아 다녀야 할 판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학원의 논술강사로 일하기도 했으며, 이하리 산매 골에 정착해서는 집을 가꾸는데 밤낮으로 매달리면서 지역의 문인들과 교류도 조금씩 횟수를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민예총과의 인연

안동에 내려온 후 만나온 인사들의 성향이나 예술인의 권익을 위해 성역 없이 일하다 보니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연이 깊게 닿아 있었다. 전 지부장의 강권에 의해 물려받은 안동지부장이라는 직함은 자유로운 예술혼을 가두기엔 그지없는 올가미였다. 귀향의 의미와 민족문화예술 사업, 문화예술 교류와 민족예술인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사업, 전통문화를 찾아내고 전승하기 위한 사업 등과의 사이에서 고민하며, 만나는 예술인들을 위한 권익을 찾기 위해 매진한 시간이었다. 후회는 없다고 한다. 다만 아쉬움은 남는다고 회상한다.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이육사시의 한자시어 연구》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이육사문학관의 사무국장으로 재작 중이다. 시인은 일전에 포항에서 ‘청포도 문학거리’를 조성하는 사업이 있다는 것을 듣고는 육사가 포항 송도원에서 요양한 적은 있지만 그곳이 ‘청포도’의 시상지라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또한 논문에도 기술한 적이 있지만 “먼데 하늘이 알알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육사의 고향은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 마을인데 이 ‘원촌’(遠村)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먼데’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먼데’를 교과서에서 ‘조국 광복’을 정답으로 가르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우려를 표시한다. 시는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육사 선생이 그렇게 의도하고 썼다고 하더라도 획일화된 주입식 정답을 가르치는 현재의 문학교육 현실을 질타했다. 등단 이후 시집《어느 모노드라마의 꿈》을 낸 적이 있는 시인은 올해 안에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을 출간할 예정이고, 내년 초엔 두 번째 시집을 내기위해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준비 중이라고 한다. 산문집 출간에 관련이 있는 필자도 기대가 크다.

 

■된장시인의 소박한 꿈

자리가 무르익을 때 즈음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를 묻는다. 막힘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꿈이란 단순할수록 성취가 쉬운 것 같다.’ 미래의 꿈인 아이들과 안동시민을 위해, 그리고 문학도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도서관 하나 짓고 싶단다. 누구나 찾아 와서 꿈을 꿀 수 있는 공간, 머물러 있는 그 순간만은 행복감에 빠질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자연과 함께 책과 함께 힐링(heling)하는 문화놀이터의 사랑방을 원한다고 한다. 그러며 까칠한 필자에게 조언을 해 준다. 평소 형 동생으로 지내니 안타까운가 보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적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아마도 이는 자신에게 하는 마인드컨트롤이 아닌가 생각하며 마무리 하련다.

 

그대 떠난 빈자리에

 

 

이위발

 

 

바람이 불었다

그대가 초승달처럼 절정을 향해 치달릴 때

하늘은 그을린 솥단지 바닥처럼 시커멓고

구름장은 한군데도 틈새가 없었다

사납게 일렁이는 나뭇잎들의 물결에

손금 같은 산봉우리들이 비에

파랗게 질린 채 서 있었다

봄날 벌레처럼 의식은 벅찬 감흥으로 차올라

목련나무 잎들은 하나의 욕망이고

기도이고 눈물이고 회한이었다

그대와 마주치는 신비한 순간

나뭇잎들도 물보라 되어

몰려오고 솟구치고 날아다녔다

눈물 보다 더 비극적인 그대의 미소

어떻게 내 심장이 비둘기의 둥지일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들의 편지들이 구구거리며

날갯짓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안개는 엉긴 우유처럼

짙어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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