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만에 나온 박광배 시인의 첫 시집/나는 둥그런게 좋다/시인학교
2013. 11. 23. 15:52ㆍ여러가지 알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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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시인은 그를 ‘강골(强骨)’이라 한다. 세월도 여자도 자본도 그 무엇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지만 오직 시만이 그를 부드럽게 한다고도 했다. 이 기막힌 지적은 ‘과연’하고 나의 무릎을 치게 한다. 그는 살은 다 발라내고 뼈로 시를 써왔다. 그런 그가 이룩한 성과물로 나는 [벽]을 그중 높이 본다. 한편 “여지껏 뼈만 만지고 살았다”는 반성과 함께 “살 속에 흐르는 피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 것도 그가 시인으로서 그만큼 원숙해졌음을 가늠케 한다. [나는 둥그런 게 좋다]는 시가 씌어질 수 있는 것도 그 경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 이민호(시인)
시인 박광배는 ‘만고의 역적 놈’이다. 어릴 때에... 이산하(시인, [상상너머] 편집주간)
나는 요새/자꾸 김사왕을 떠올린다./역전 케이오펀치를 잘 날리던 그/두들겨 맞다맞다가/끝내 한 방을 못 맞추고/고꾸라지던 맷집의 황제 ---「하혈」 중에서
삽질이 영 시원찮은 그/뜯어보면 예술가처럼 섬세하게 생겼다.//-그렇지요, 서민들이사 인생이 특수훈련이지요.//어쩌다보니 다리를 전다. ---「특수훈련」 중에서
병원공사 할 때 치질로 똥구멍이 터졌는데 수술할 시간 없고/약은 그냥 주데. 안 쉬었어. 애기 아르바이트 안 시킬라고. ---「아비 하나」 중에서
아이엠에프 전에는 돈 잘 벌었지./신문보급소 했는데 찌라시 수입이 짭짤했거든./형 보증 섰던 게 집이고 뭐고 다 날려버렸어. ---「노가다 유람」 중에서
슬리퍼에 맨발이다./미안한 듯 불안한 듯/표를 끊더니/금세 어디로 갔다.---「박물관에서」 중에서
29년 만에 나온 박광배 시인의 첫 시집
똥 누는 마누라 주댕이에/쪽 하니 입을 맞추자/한마디가 날아온다./“미친눔.”//…[중략]…/나는 하느님이 무심코 던진 짱돌이란 걸/요새 알았다. ―[하느님이 보낸 간첩] 부분
나는 요새/자꾸 김사왕을 떠올린다./역전 케이오펀치를 잘 날리던 그/두들겨 맞다맞다가/끝내 한 방을 못 맞추고/고꾸라지던 맷집의 황제 ―[하혈] 부분
밤에 보는 하늘은 도떼기시장/나 혼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종알종알 와글와글 ―[수다쟁이] 부분
시인의 자기 인식은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데 있다. '미친눔'이나 '짱돌'로 변주되는 인물형은 정상궤도를 이탈한 자의 모습이다. 이와 병행하여 그의 눈에 포착된 타자 역시 지향점을 상실한 자들이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이 ‘던져진 존재’들은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이처럼 행동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저 구석에 몰려 몰매 맞는 자의 맹목만이 그들이 소유한 삶의 방식이다. 이 초대받지 못한 삶의 모호함은 예측할 수 없는 타자의 삶을 환유적으로 드러낸다. 좌절과 실패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 삶의 현실은 비정하다.
하지만 이 실존적 아이러니로부터 타자의 존재근거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도떼기시장’이다. 이 타자의 공간은 비정상적이며 밀교적이다. 초대받은 존재는 경험할 수 없는 무질서의 세계다. 박광배의 시는 이 난장 속에서 잉태되고 생산되었다.
건너편 생선좌판 아지매 눈만 꿈벅이더라./졸지에 지씨 형님 좆대가리 올라탓네./늠름한 지씨 형님 정신없이 발라대네./힘 뻗친 저 물건 기운 한껏 받아서/돈들 무장무장 버시라./씹들 허벌나게 허시라. ―[가락시장에서] 부분
해가 뒤통수로 딸꼭 숨어/부처님 모양을 한 인수봉이/나도 한잔 끼워주라 엉덩이 들썩이는/오늘은 간조날 기분 좋은 날/인수봉 산딸기 산딸기들이 노는 곳/꽥꽥대며 우리는 술 마시러 간다./술, 술 개천 따라 술 마시러 간다. ―[간조날] 부분
집단적 거인을 꿈꾸는 시
난장에서 떠도는 말들은 정제될 줄 모른다. 이 비공식적이고 탈중심적 언어는 던져진 존재의 삶의 형식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나는 엄숙하고 공고한 현실에 대한 냉소와 풍자다. 또 다른 하나는 죽음을 넘어선 카니발리즘이다. 자본과 성은 지배계급의 전유물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고고한 가치를 지니고 전적으로 숭앙하거나 금기시 된다. 난장의 타자들은 이 중심적 표상을 시장 좌판에 늘어놓고 해체해 웃음거리로 만든다. 그 순간 비린내 나는 자본의 썩은 몸뚱이는 생명어린 창조적 소금의 기호로 재생산된다.
자본과 교환된 몸은 ‘해가 뒤통수로 딸꼭 숨어’버린 죽음의 문전에서 재생한다. 죽음을 딛고 흘러간 시간을 삶으로 틀어 버린 그날(간조 날)이 어찌 축제의 날이 아니겠는가. 시는 언제나 죽음을 통과하여 신화적 세계를 보여주었듯 위 시에서 상서로운 공간 인수봉에서 타자의 세상 한판 축제가 열린다. 이 환희용약하는 근원적 세계에서 이성적 언어의 개입은 불허되며, 수사의 형식은 무력하다. 오직 ‘꽥꽥’거리는 원초적 언어만이 지배적이다.
수직적 세계관을 일소하고 평등하게 마주한 타자들의 공간은 바흐친이 말했던 ‘자유로운 인간들이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해방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로테스크한 웃음의 동일성은 자연스럽게 배제의 원칙을 따른다. 즉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다. 그러므로 박광배의 배제의 언어는 저 밑바닥에 포괄의 잡스러움을 내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놈들아 내려와라./난간도 만들어 놓지 않은 세상에서/나는 호각을 분다./너희들이 올라가고픈 그곳이/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너희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일상은 이렇듯 위험투성이/하여 노심초사는 나의 직업이다. ―[나의 직업] 전문
난장의 언어는 삶이 처한 두려움과 공포를 배경으로 한다. 이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는 벽에 부딪치고 수렁에 빠진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이때 비로소 박광배의 목소리는 당당하고 깐깐하며 카랑카랑하다. 일상은 위험천만하다. 이 와중에도 박광배는 익살스럽고 바보스러운 어릿광대로 변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던져진 존재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자기 인식의 과정을 수행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백척간두에 서려는 타자 앞에서 그는 집단적 거인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고통의 기호에 던진 시의 뼈
박광배는 언제나 강골이다. 세월도 여자도 자본도 그 무엇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러나 오직 시만이 그를 연약하게 했으며 눈물짓게 했고 소리치게 했다. 그가 욕망하는 당당하고 깐깐하고 카랑카랑한 시는 아비의 목소리다. 탱글탱글한 아비의 몸뚱이다. 그러나 그 정전을 부정하면서, 비난하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욕망하는 데 그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그는 외디프스적 시나리오를 충실히 수행한 시인이다. 아버지로부터 생래적으로 전수받은 살점들을 발라내고 수척해졌다. 하나의 뼈로 남은 그의 말끔한 시가 이 시집을 이루고 있기에 그렇다.
치골과 치골이 딱, 딱 부딪칠 때/아하, 나에게도 뼈가 있었구나./그렇지, 너도 뼈가 있구나./이 뼈도 그나마 재수 좋으면/흙더미에 흩어져 굴러 댕길 거다./새들이사 늘 지저귀겠고/해야 그렇게 비추겠고/비 눈 우박이사 오게 생기면 오고/안 올 거면 안 오겠지./뼈와 뼈가/으르렁거리며 의사소통을 한다.//사람한테 뼈가 있었구나. ―[뼈] 전문
서로 다른 얼굴을 지우고 서로를 인식하는 순간은 골수에 박힌 고통을 서로 받아들이면서 가능하다. 시인은 인간의 종말을 꿰뚫고 있다. 삶의 무변화가 곧 인간의 죽음을 의미한다면 새와 해와 비, 눈, 우박이 이루는 초월적 세계는 묵시론적이다. 그러므로 이에 관심 두기보다는 타자와 타자가 만나는 존재론적 변화를 꿈꾸고 있다. 이는 아버지를 부정하고 난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점 다 발라 낸 빈 몸뚱이 뼈로 고통에 신음하는 타자와 만나려는 뜻이다. 새로운 대상과의 소통은 발견이며, 으르렁거리는 날것의 발성이다.
박광배 시인은 1984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시선집 [시여 무기여]에 ‘용평리조트’ 외 1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리고 무려 29년 만에 이제 첫 시집이 나왔다. 그의 시에는 자극적인 아이러니나 눈이 번쩍 뜨이는 역설은 없다. 하지만 그 대신 ‘당당하고 깐깐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내용과 ‘탱글탱글한 몸뚱이’의 형식이 있다. 지사의 풍모가 풍기는 만해나 육사의 시와는 달리, 박광배의 시는 유쾌한 어릿광대의 노래를 담았다.
정동용 시인, 이소리 시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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