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3. 09:53ㆍ이하의 산문들
바람이 되어도 하고 싶었던 말
설날 아침, 세배하고 난 뒤 자식들에게 얘기했다. 덕담치곤 무겁게 들리겠지만 이번 기회에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 말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엄마, 아버지가 아파서 병원 가서 의사가 되돌아올 수 없단 말하면 연명하지 말고 장기 기증해라” 했다. 장기기증본부에 가입도 해놨다고 덧붙였다. 자식들의 얼굴은 무거웠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 아버지 죽고 난 뒤 절대로 제사 지내지 마라! 이 두 가지는 꼭 지켰으면 한다!”고 했다.
지금은 도시에 나가 각자도생하는 자식들한테 어릴 때부터 공부를 강조하진 않았다. 인사 잘하라는 것 가르쳤고, 남보다 앞서가라고 하지 않았고 남과 다르게 되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특별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평범함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집사람에게 속 썩이지 않은 아이들한테 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서 말을 건넸다. “여보, 우리 아이들한테 감사패 하나 해주고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 대답이 돌아온 건 뭐 그런 걸 해주냐는 것이다. 하지만 말보단 부모의 마음을 담아 전해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삼 남매 싸우지 않고 우애 있고 서로 도와가면서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라도 고마움의 표시를 해주고 싶었다.
사실 다 큰 자식들에게 고마움이나 감사의 표시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가정마다 다 다르겠지만 사실 지금도 그런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생각날 땐 말하려고 한다.
덕담을 마무리 할때 쯤 질문이 던져졌다. “그럼, 아버지 돌아가신 날은 뭐하면 되는데요?”
“기일忌日 전 주말에 가족들이 다모여 여행을 가거나 식사하면서 엄마, 아버지 생각하면서 손자들한테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 들려주면 된다.”고 했다.
사실 제사는 유교문화의 덕목 중에 으뜸으로 여겼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조상 제사 잘 모시고 오는 손님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 유교문화의 뿌리였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사 문화도 변해야 한다.”는 퇴계 종손 이근필 옹의 말에 답을 얻었다.
시대는 급속도로 빠르게 진화되어 가고 있다. 우린 그냥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은 초속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후대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말에 재령 이가 석계 이시명 할배와 정부인 장계향 할매의 아들 중 정우제 할배의 9대 주손인 아버님이 무덤에서 “네. 이~놈”하고 벌떡 일어나실 것 같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아버님도 제 말에 수긍하고 물러나실 것 같다. 시대가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 공감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왔다가 우주로 돌아간다. 형체를 가진 모든 존재는 에너지 상태인 우주에서 왔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육신은 흙으로 변하겠지만 그 흙도 언젠가는 우주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래연구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미래에 대해 다양한 예측을 내렸다. 그중에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고 했다. 2050년엔 인공지능이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꿀 것이라 했다. 멀지 않은 27년 뒤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변화는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설날 아침의 덕담이 죽고 난 후 바람처럼 사라져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한 미래에 대한 작은 소망이 후대에선 또 다른 희망으로 바뀌어 나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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