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3. 10:10ㆍ이하의 산문들
어머니의 품속을 다녀왔다!
며칠 전 고향을 다녀왔다. 변한 것이 없는데도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다. 설렘과 두근거림이 덜한 것은 세월 탓이라고 하더라도, 고향은 늘 평온하고 푸근했다. 그래서 그런지 고향을 ‘어머니 품속’ 같다고 한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란 시의 마지막 연이다. 이 시는 화자가 고향에 대해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지만 자신의 정서와 인식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고향은 과거가 있는 곳이며, 뿌리 내려있는 정든 곳이며, 마음속에 형성된 하나의 근원적 세계다. 고향은 공간, 시간, 마음, 이 세 가지가 합쳐진 복합된 원초적 샘이다. 공간, 시간, 마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치우치는가는 선택할 수 없다. 어머니 뱃속에서의 생물학적인 탄생과 지정학적인 태어남이 고향이다. 하지만 태어난 시간과 공간이 같기에 어머니와 고향을 동일시하고 있다. 고향은 다른 의미로서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은 태어나서 자기 결핍을 시인하고 일상으로부터 자기 해방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향은 떠남으로써 고향이 보인다는 역설도 있다. 고향은 태어나기 전인 모태 이전을 고향이라고도 한다. 누군가 죽는다는 것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 부모님의 등살에 서울로 유학 갔다. 방학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그리운 고향 집이 가까워지면 목청껏 엄마를 불렀다. 어머니는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와 덥석 안고는 볼을 비볐다. 눈엔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고~내 새끼” 하면서 가슴으로 안아 주었다.
시공간은 달라도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을 맞이하는 풍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다만 핸드폰으로 주고받는 소통이 있다 보니 행동은 달라도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고향이란 탯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단절할 수가 없다. 행동으론 가능해도 마음속은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도 모른다.
유독 시인들이 고향을 주제로 한 시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어머니다. 조병화 시인 시 「고요한 귀향」에서 “지나온 주막들 아련히/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아,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김후란 시인의 시 『고향』에서도 “감나무 한 그루/심었어요/어머니 기침 소리가/들려요.” 나태주 시인의 『고향은』에서도 “부엌에서 뒤란에서/저녁 늦게 들려오는/어머니 목소리.”
어머니는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개발로 인해 도시로 나가거나 부모들이 돌아가거나 다들 떠나고 없는 황량한 고향이라도 타향에서 고향 이야기만 나오면 들떠서 열변을 토한다. 고향이란 보상 없이 주는 증여와 환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명절이 다가온다. 꿈에도 잊히지 않는 고향, 어머니의 품에서 잠시나마 평온함을 누리고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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